2016년 2월 4일 목요일

강병국 목사를 경계하는 이유

전 기독교회사에서는 칼빈 파와 알미니안 파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칼빈의 교리(예정론 등)가 비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알미니안 파가 들고 일어났는데
사실 당대의 신학적 대세는 알미니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민중이 보기에도 칼빈의 교리가 너무나 터무니 없이 엇나간 생각들(극단론적 운명론으로 발전)이었으며 오히려 알미니안의 해석이 성경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은 칼빈파였습니다. 알미니안은 숙청을 당했지요.
이것이 우리 개신교 선조들이 저질렀던 기독교회사의 암울한 단면입니다.

과거 수백년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
성경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일단 자기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자신의 교리를 성경적이라 무조건 우기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회사의 정통이단 시비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이 어두운 암영의 한 단면이 인터넷 상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실로암 성경침례 교회라는 곳에서 자신의 교리와 성경 해석에 근거해서
sostv 강병국 목사님을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데요...

이유인 즉슨
강병국 목사님이 예정론을 부인하고 성도의 견인(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500년 전 칼빈파와 알미니안파의 대립 속에서 생겼던
정통이단시비의 역사가 현대판에 재현되는 꼴입니다.

신문과 여론(미주 데일리 중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생각과 철학으로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힘없는 목사를 이단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의 조명하심과 거듭남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이렇게 성경대로 말하고 전하는 사람을 경계해야할 이단이라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병국 목사를 경계하라고 주장하는 실로암 성경침례교회의 글.​>






강병국 목사님을 향하여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요했는데요...
우리가 성경을 거듭남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과연 누가 소경이고 누가 소경을 인도하는 경우인지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일단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인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답변하고자 합니다.
강병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전능하심을 제한하는 의미로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구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옹호하는 주장도 아니기​ 때문에 성도의 견인교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실제로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변화된 삶으로 증명되고 나타나는 것이지
변화와 거듭남 없이 또는 품성은 여전히 세상의 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해 주실거야..."라는 착각과 자기 기만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병국 목사님은 그러한 자기 기만을 경계하기 위해 성도의 견인(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나 예정론의 잘못된 적용에 대해서 문제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 수 없음을 입증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로마서가 그러하며
"너희가 빚진 자로되(택함받은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지니"(롬​8:13)
또한 히브리서의 기록이 그렇습니다.
"한번 비췸을 받고(택함을 받고)...타락한 자들은...그 마지막이 불사름이 되리라"(히​6:4~8)

오히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성도의 견인)라는 사상이 신구약 성경 및 바울의 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바울은 "내가 전한 뒤 오히려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한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는 발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의 준비(십자가, 성령)를 갖춰놓으셨을지라도​
우리가 끝까지 불순종과 반역의 정신으로 굴복하지 않는다면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기까지 그분의 뜻(계명의 품성)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바울의 진심어린 권면과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과거형 뿐만 아니라 현재형 미래형으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정설은 어떻습니까?
강병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예지예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그분의 예정하신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예정되어 있는 자들은 죄를 지어도 혹은 불순종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라는 거짓 평안 즉 예지예정의 잘못된 적용을 경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은혜를 힘입어 사도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 승리를 얻어내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세상에 여전히 속해 있으면서 변화되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전능과 예정이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하여 이렇게 잘못 적용되고 있으니
그 오류(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성경해석과 교리)에서 나오라고 하는 것이지
성경적인 하나님의 예정과 전능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이 한 사람의 의도를 이렇게 왜곡시킵니다.

기독교에서 다수가 깡패가 되는 문화가 이젠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수가 속한 교파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인 여론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정통이다라는 교만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왜 누구를 경계하자, 누구를 조심하자...라고 말할까요?
그 이유는 그 대상이 진실로 성경적이고 더 깨끗하고 맑고 순수한 진리를 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세요.
대체로 의롭지 못하고 자신의 의에 문제가 있는 편이
의롭고 순전한 편을 죽이고 핍박했던 역사입니다.

누구를 경계하자 조심하자...라는 선전 구호
물론 터무니 없는 이단 사이비 종파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진실로 성경대로 증거하고 성경대로 말하고 실천하는
힘없는 사람에게까지 정치적인 논리와 약육강식의 논리로 적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암울하고 비상식적인 양심에도 맞지 않는
기독교 자체 내의 잘못된 정통이단 시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오류가 되고 오류가 진리가 되는 기독교 사회 내를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조롱하고 혀를 차고 있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자체 내의 정화의 빛을 잃어가고 진리의 힘을 잃어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 논리에 입각한 잘못된 이단사냥의 풍습때문인 것입니다.

댓글 1개:

  1. 다수민주주의 는 비기독교 의; 상징 입니다. 예수님은 다수의 목소리에 십자에 달리셨습니다.

    이신칭의 와 성도의 견인 은 칼빈의 신학적 오류가 아니라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은 비밀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자유하신분으로 그분에 뜻에 의하여 은폐된 그분에 주권적 인 부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속한 사람에게 주는 로고스이며, 구약에는 전체적인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이 주신 형벌속에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에 주권에 속해 있음을 말하며,택함을 입은 자녀에대한 구원에대한 (성도의견인) 이 나타나며. 택한백성의 의무가 무엇인지 하나님백성 이며 신부인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수속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신창의 와 성도의 견인을 잘못해석 하여 ,한번구원 영원구원,택자와,버린자 란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성경적 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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