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목요일

sostv 사이트와 책자를 통해 진리를 발견하다. (2016년 2월 간증글)

저희 sostv 사이트와 책자를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시고 거듭남을 경험하신
한 자매님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저희 sostv를 이단이라고 정죄하시는 교단과 목사님들도 일부 계신데요 반면에 sostv는 너무 깨끗해서 정죄할 수 없다라는 양심적인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이단인지 삼단인지는 저희 sostv 자료를 통해 거듭남을 경험하시는 분들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회심시키시고 변화시키시는 구속주에 대한 애타는 찬양을 노래하는 분의 간증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정통이고 이단인지 자신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우리로 하여금 거듭남의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하시고
그 하늘 합창단의 일원이 되도록 인도해 주심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 sost 사이트를 발견하시고 진리를 경험한 한 자매님의 간증.

하나님께서 마음을 모두 들여다보고 도와주고 있으심을 느낀 지난 1년
올바른 바램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즉각 즉각 들어주시는 주님!
저는 교인이었지만 어떤 일들을 통한 실망과 충격 후 발길을 끊었어도 유신론자였지만,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 점점 의문에 빠지는 암흑기를 길게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가까운 가족의 " 죽음"을 겪으며  지독한  그리움과 우울증이 심해져서 가족을 다시 만나고, 죽음을 넘어갈 수 있다면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오기와 열망을 가지게 되었고,  문득 어렴풋이 떠오른 " 부활" 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찾기 위해  성경을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부활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입시나 출세를 위해서도 수 년간 많은 양의 공부도 해내면서 죽음을 넘어서는 일인데,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독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일에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5시간 주말에는 8-9시간씩 앉아서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글자를 읽어나가는 수준이었지만 , 예수님의 행적이 담긴 요한복음을 끝내면서부터는 감동이 솟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들이 뒤에 있는지 궁금하고, 종국에는 예언이 되어 있다는 계시록과 다니엘서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성경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와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회개하게 하시고, 눈을 열어주시고 , 단단한 마음을 녹여 울게 하셨습니다.  성경 통독의 마지막 즈음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닌 빛이 번쩍이는 느낌,  십계명에 글을 새긴 그 엄청난 힘을 느끼며  책 중에 성경책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활"의 확신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실감과 우울감도 내면의 아픔도 모두 치유되었지요.  그 전에는 부활이 가족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것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주님을 가장 만나고 싶은 이유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이 모두 마치 제 자신인 듯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해보아도 해결 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죽을 힘을 다해 겨우 겨우  예수님 옷자락 만지고 나은 여인이 저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좀 더 깊이 알고보니  제가 만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만질 수 있게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성령의 신비한 이끄심을  체험하고 느끼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신약 성경을 통해 주님을 만난 이후 제가 마음속으로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이나  어떤 주제를 놓고 골몰히 생각하면 일주일 안에  또는 하루 안에도  해답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우연히 듣게 된 설교, 누군가 전해 준 책 , 남, 초대, 모르는 분이 보내준 파일 등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혼자서 글을 읽어나가는 것 말고 , 저를 가르쳐 주실 선생님에 대한 바램과 다니엘서에 대한 연구를 깊이 생각 중일 때 바로 다음 날 정오에 모르는 분으로부터  sostv "손계문 "목사님의  “ 성경과 예언 시리즈” 파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모두 읽고 계신다는 느낌이 번쩍 들면서 제게 보내 주신거라 여기고
진지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일이 끝난 후  마치 수험 공부하듯 성경을 펼치고, 필기를 하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이 끝난 후 하던 다른 모든 일을 다 재쳐두고, 그 파일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집중했습니다. 그 다음은 마음에 다른 질문이 생겼고,  그러면 또 그와 연관된 영상 파일이나 책자 등을 받게 되고, 그럼 또 저는  공부하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검진을 받게 되었고, 심각히 걱정 할만한 상황이었는데도 결과나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마음으로 말씀에 도취되어 병원 검진 전후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계속 핸드폰으로 말씀을 읽거나 듣고 있었는데,   기도와 말씀의 능력 인지  심각한 증상들은 병원 문을 나서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동안 배웠던 지식들 , 계획들과 바램들이 순식간에 백지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바친 시간들이  아깝고 후회되며  이 귀중한 지식을  지금에서야 배워가고 있는지 스스로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예수님 없이 사는 삶에 진정한 영혼의 기쁨이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캄캄하던 우울증과 회의감 ,마음의 상처들이 순간 치유되어 버렸는데,  어찌 그 전의 삶을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나 고민이 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께서 보내주신 SOS TV 잡지를 열심히 읽었고,  사는 장소와 방식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지속되어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검색창에 SOSTV라고 검색하던 중 이 사이트를 검색하여 당장 가입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sostv 사이트에 가입하여 얻게  된 정보들은 구체적인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공부할 많은 양이 일목요연하게 다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는 공부하다 모르는 내용들을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고, 찾아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 성경의 있는 그대로 풀어 주시는 방식이 가장 좋았고, 성경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별할 수 있는 진리는 말 그대로 “단순”하고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구하면 구한 것을 주시고, 찾으면  바로 찾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리며. 이 사이트에 들어와서 이미 오랜 시간 먼저 앞서 연구하시고, 나누시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으신  아름다운 분들과 그 모습들을 보며 숙연해지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가치 없는 것들도 모두 돈을 매겨 파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무료로 나누고 , 나눠주시는  큰 은혜  감사드리며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2016년 2월 22일 월요일

sostv 강병국 목사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역사가 증언합니다.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가인들이
거듭남을 경험한 아벨들을 핍박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강병국 목사님(sostv)이 과연 이단인지 직접 그분의 설교를 들어보고 판단해 보셨으면 합니다.
목사이면서도 마음과 심령이 거듭나지 못해 오랜 세월 고통방황하다가
하나님께 참된 마음의 굴복을 경험하고 전도 목사의 길에 서게 되셨습니다.


강병국 목사님 설교 한편을 들어보세요.
어떤 목사님이든 그분의 설교 한편을 들어보면 그의 사상과 외침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참된 회심과 거듭남, 영생의 길을 성경대로 증언하는지
인간의 유전과 논리로 구원아닌 철학을 말하고 있는지...



sostv 강병국 목사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란?)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란 외형으로 나타나는 태도나 행위가 아닙니다. 

물론 가능한한 최대의 친절과 겸손이 겉으로 드러나야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는 목표는 아닙니다.
그것은 진짜 주가 되는 목표가 내면에서 이루어 졌을 때
겉으로 표현되는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만일 외면적 성장이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주가 된 목표라면

불교의 승려나 혹은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랸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따름으로 일어나는 내면의 성장을 가리킵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인내하고 절제하고

삶의 어떠한 환경 하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자족하는 능력~
 
하나님의 맘과 뜻을 알기에 폭풍우 같은 시련 가운데서도 안식하는 믿음
그리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배우고 주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장입니다.
이럴 때 세상이 모방할 수 없는 참된 경건과 친절과 온유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향기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sostv 강병국 목사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란?) 파트영상

▶ sostv 강병국 목사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란?) 풀영상

2016년 2월 15일 월요일

강병국 목사 이단성 있는가? (교회와 신앙에 대한 반론글)

<교회와 신앙>은 기독교계 인터넷 신문이다.
2005년 7월 1일 보도를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월간지(1993년-2002년)와 일간지(2002년-2005년)로 기사를 제공했다.



발행인은 통합측 장로교 성직자인 장경덕 목사이다.    -위키백과-


고신측에서 강병국 목사를 이단성 있다고 규정했으며
그 기사를 <교회와 신앙?>의 전정희 기자라는 사람이 인용했다.
사실 이곳도 일정한 금전을 주고 받으며 이단성 있는 곳을 사주를 받고
기사를 올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 곳에서 강병국 목사의 설교가 "상당부분 비성경적이다"라고 코멘트를 달고 있는데
그 원인을 역사와 전통이 인정하는 원죄론을 강병국 목사가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만일
원죄론이 성경과 맞지 않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따르겠는가? 아니면 역사와 전통을 따르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폐하느뇨?"

실로 비성경적이고 오류적인 전통이  성경적 진실과 진리를 배척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 당시나 현재나 영적 기류와 분위기는 상당부분 비슷한 것임을 인자하게 된다.

강병국 목사 과연 이단인가?
원죄론이 과연 성경적인가?

장로교 고신이시여 그리고 전정희 기자여
그렇게 역사와 전통에 호소하지 말고
본인들이 직접 거듭난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판단해 보시라...


<강물의 반론>

역사 이래로 종교적 핍박과 이단 정죄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다수 기득권 교회가
소수 광야 교회를 대상으로 자행해 왔습니다.

역사가 그를 증명합니다.

로마에 급속도로 펴져나갔던 초대교회가 로마 국교화 되자
교회에는 부패와 타협이 물밀듯이 들어오게 되었고
순수한 성경 진리보다는, 이교의 가르침과 철학으로 혼합된 원죄설, 예정론 같은 이설이
교회의 정설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기득권(성 어거스틴-원죄설)에 대항하여 그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소수의 진리 전파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원죄설은 정치와 종교가 결탁한 로마교회의 정설이 되어버렸기에
성경의 권위가 아닌, 교회의 조직의 권위로
원죄설에 대항하여 싸운 소수의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로마교회는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잘못 믿는 다수의 기득권 층이 제대로 믿는 소수의 광야교회를 핍박해온 일.

전정희 님!!
결론부터 내리고 사물을 보기 시작하면 사물의 진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단이다"

이것은 자기 모순이며 순환 논증의 오류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따져가며 본질을 파헤친 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결론부터 내리고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은
"제 논의 물대기 식 논리"밖에 도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도..."성경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이단이다" 라고 기술해야 합니다.
"장로교 고신이 이단성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단이다" 라는 논거는
설득력도 없으며 합리적이도 이치적이지도 못합니다.

진정한 이단 분별과 진리와 오류의 구별은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로교 고신은 완벽한 성경의 진리 위에 서있다는 보장은 또한 어디에 있습니까?

철저한 장로교 고신 신자였던 제가...
교회의 외면과 핍박을 감수하면서도 "원죄설, 예정론은 아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말 죽음과도 같은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갈망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칼빈은 절대 무오류의 성경의 권위자라는 근거는
그리하여 장로교의 신학과 교리가 가장 성경에 일치한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인간의 권위와 전통에 대한 호소일 뿐입니다.

인간의 권위와 전통에 대한 호소는
역사 이래도 다수의 기득권 교회가 소수의 광야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사용된 근거들입니다.

전정희 님.
성경을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살펴 주시고
진리와 오류가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과연 무엇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아 주십시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누구라도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성경은 원죄설을 지지하는가?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겔18:2,3)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2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하니하리라"
(겔18:30)




 성경이 원죄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류구절 바로잡기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이 구절은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원죄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구절은 다윗이 자신의 죄악을 변명하기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잖아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죄를 범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 사정을 좀 이해해 주십시요~"... 라는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주님 앞에 무슨 의로운 존재이겠습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고백하오니, 저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고(2 절) 우슬초로 저를 정결케 하옵소서(7절) 상한 심령으로 주께 자백하오니(17절) 저에게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10절)"...라는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 태어났다는 고백을 죄를 지을수밖에 없는 어쩔수 없는 원죄를 가진 인간이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뼛속까지 깊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 위해 말했던 것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 저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
--> 저는 뼛속까지 깊은 죄인입니다. ○ 




2016년 2월 4일 목요일

강병국 목사를 경계하는 이유

전 기독교회사에서는 칼빈 파와 알미니안 파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칼빈의 교리(예정론 등)가 비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알미니안 파가 들고 일어났는데
사실 당대의 신학적 대세는 알미니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민중이 보기에도 칼빈의 교리가 너무나 터무니 없이 엇나간 생각들(극단론적 운명론으로 발전)이었으며 오히려 알미니안의 해석이 성경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은 칼빈파였습니다. 알미니안은 숙청을 당했지요.
이것이 우리 개신교 선조들이 저질렀던 기독교회사의 암울한 단면입니다.

과거 수백년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
성경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일단 자기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자신의 교리를 성경적이라 무조건 우기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회사의 정통이단 시비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이 어두운 암영의 한 단면이 인터넷 상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실로암 성경침례 교회라는 곳에서 자신의 교리와 성경 해석에 근거해서
sostv 강병국 목사님을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데요...

이유인 즉슨
강병국 목사님이 예정론을 부인하고 성도의 견인(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500년 전 칼빈파와 알미니안파의 대립 속에서 생겼던
정통이단시비의 역사가 현대판에 재현되는 꼴입니다.

신문과 여론(미주 데일리 중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생각과 철학으로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힘없는 목사를 이단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의 조명하심과 거듭남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이렇게 성경대로 말하고 전하는 사람을 경계해야할 이단이라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병국 목사를 경계하라고 주장하는 실로암 성경침례교회의 글.​>






강병국 목사님을 향하여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요했는데요...
우리가 성경을 거듭남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과연 누가 소경이고 누가 소경을 인도하는 경우인지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일단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인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답변하고자 합니다.
강병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전능하심을 제한하는 의미로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구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옹호하는 주장도 아니기​ 때문에 성도의 견인교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실제로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변화된 삶으로 증명되고 나타나는 것이지
변화와 거듭남 없이 또는 품성은 여전히 세상의 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해 주실거야..."라는 착각과 자기 기만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병국 목사님은 그러한 자기 기만을 경계하기 위해 성도의 견인(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나 예정론의 잘못된 적용에 대해서 문제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 수 없음을 입증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로마서가 그러하며
"너희가 빚진 자로되(택함받은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지니"(롬​8:13)
또한 히브리서의 기록이 그렇습니다.
"한번 비췸을 받고(택함을 받고)...타락한 자들은...그 마지막이 불사름이 되리라"(히​6:4~8)

오히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성도의 견인)라는 사상이 신구약 성경 및 바울의 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바울은 "내가 전한 뒤 오히려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한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는 발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의 준비(십자가, 성령)를 갖춰놓으셨을지라도​
우리가 끝까지 불순종과 반역의 정신으로 굴복하지 않는다면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기까지 그분의 뜻(계명의 품성)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바울의 진심어린 권면과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과거형 뿐만 아니라 현재형 미래형으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정설은 어떻습니까?
강병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예지예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그분의 예정하신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예정되어 있는 자들은 죄를 지어도 혹은 불순종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라는 거짓 평안 즉 예지예정의 잘못된 적용을 경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은혜를 힘입어 사도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 승리를 얻어내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세상에 여전히 속해 있으면서 변화되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전능과 예정이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하여 이렇게 잘못 적용되고 있으니
그 오류(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성경해석과 교리)에서 나오라고 하는 것이지
성경적인 하나님의 예정과 전능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이 한 사람의 의도를 이렇게 왜곡시킵니다.

기독교에서 다수가 깡패가 되는 문화가 이젠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수가 속한 교파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인 여론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정통이다라는 교만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왜 누구를 경계하자, 누구를 조심하자...라고 말할까요?
그 이유는 그 대상이 진실로 성경적이고 더 깨끗하고 맑고 순수한 진리를 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세요.
대체로 의롭지 못하고 자신의 의에 문제가 있는 편이
의롭고 순전한 편을 죽이고 핍박했던 역사입니다.

누구를 경계하자 조심하자...라는 선전 구호
물론 터무니 없는 이단 사이비 종파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진실로 성경대로 증거하고 성경대로 말하고 실천하는
힘없는 사람에게까지 정치적인 논리와 약육강식의 논리로 적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암울하고 비상식적인 양심에도 맞지 않는
기독교 자체 내의 잘못된 정통이단 시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오류가 되고 오류가 진리가 되는 기독교 사회 내를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조롱하고 혀를 차고 있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자체 내의 정화의 빛을 잃어가고 진리의 힘을 잃어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 논리에 입각한 잘못된 이단사냥의 풍습때문인 것입니다.

2016년 2월 3일 수요일

강병국 목사 생애의 빛 sostv 설교 말씀 (참된 성령의 역사와구원)


sostv 강병국 목사

십자가의 의미와 성령의 역사를 성경적으로 참되게 알려주는 분이십니다.
일부 이단사냥꾼들에 의해 이단으로 누명을 쓰고 계시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성경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강병국 목사님의 설교를 꼭 들어보세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와 거듭남의 역사를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증언하고 계십니다


sostv  강병국 목사님 설교 (성령과 구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알므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영생얻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개인 각자가 하나님 보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절함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을 자들은 더 이상 그 마음에 하나님을 반역하거나
그분의 성품에 반하는 죄악들을 품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의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나누어 주시는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성령의 능력은
우리가 죄짓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면죄부가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새사람으로 만들어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계명을 즐겨 순종하는
참된 의의 성품을 만들어 주는 창조의 능력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성령의 역사이며 구원입니다.​



sostv 강병국 목사​ (성령과 구원) 파트영상


sostv 강병국 목사​ (성령과 구원) 풀영상

2016년 1월 31일 일요일

강병국 목사 sostv 이단인가? (원죄설 부정이 이단?)

강병국 목사(sostv)를 이단으로 지목한 기독교 이단 상담소.
그 이유가 강병국 목사가 "원죄론"과 "예정론"을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기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예장 고신측(총회장 윤희구 목사)이 2009년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최한 제59회 총회에서 <살아남는 이들>을 발행하는 강병국 목사(sostv)에 대해 “극히 위험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며 ‘이단성’으로 규정했다.

고신측 유사기독교연구위원회(위원장 조영호 목사)는 보고서에서 강병국 목사(sostv)에 대해 “강병국은 미국에 본부를 두고 한국에 지부를 둔 ‘sostv’에서 발행하는 <살아남는 이들>을 통하여 그동안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릇된 사상을 전파하는 자이다”라고 밝혔다.


유사기독교연구위원회는 “강병국 씨는 본 교단의 신학적 입장인 예정론과 구원론에 위배되는 사상을 전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정통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받아들여 온 ‘원죄’교리까지도 부인하는 등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극히 위험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며 “총회는 그의 사상을 ‘이단성 있음’으로 규정하여 본 교단 산하 성도들이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한 줄 안다”고 보고했다.

​먼저 글을 쓰기에 앞서
필자 본인이 장로교 고신에서 나고 자란
거의 모태신앙과 다름없는 장로교인이었음을 밝혀둔다.

고신에서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구호를 외치며 자랐고
장로교 외에는 거의 모든 교파를 이단시 했던 과거 "이단 척결 사상"에 심취해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또한 아울러 밝혀두는 바이다.​

​위 고신측 이단 상담 연구소에서 강병국 목사(sostv)가 원죄론과 예정론을 부인하기에
이단이라고 규정했는데​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정말 원죄론과 예정론은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이 질문에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정직한 답변은
"단지 원죄론과 예정론은 어거스틴이나 칼빈 등 신학자들의 논리에서 나온 신학적 결과물일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본문에서 밝힌 바 "본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위배되는..."이라는 표현을 보아서도
명백하게 그렇게 밖에 도출될 수 없는 답변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거스틴이나 칼빈이 정확무오한 한치의 틀림도 없는 인간이라는 전제하에서만
강병국 목사는 이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거스틴"이나 "칼빈"이 정말 정확무오한 일점의 틀림도 없는 완벽한 신학자란 말인가?​

정말 어거스틴이나 칼빈은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성경에 근거한 교리로써 "원죄론"과 "예정론"을 탄생시킨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장로교인인 사람은 "아마 그렇지 않겠는가?" 라고 답변할 것이고
좀더 조직과 교회에 충성인 사람들은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완전한 진리다"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본인 역시 장로교에서 나고 자라고 생활할 땐 그것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성경적 진리"라고 확신하곤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스스로가 성경을 확인하고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
우리 교단이 우리 목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적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교리들을 성경적 진리라 믿고 살아온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셩경이 요구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되던가?
주님의 요구대로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게 되던가?
바울의 신앙고백처럼 죄와 싸우는 인내와 절제의 삶을 살게 되던가?
아마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역시 이러한 교리들의 결과로써 "세상과 동일한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인 나"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죗된 삶의 결과들이 비로소 나에게 영적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아가 십자가 앞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과 함께 참된 회심과 거듭남을 경험하고
비로소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원죄론"과 "예정론"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 오히려 성경과는 정반대되는 이교의 교리들이
어떻게 정통교회라 자처하는 교단들에서 정통교리로 인정받고 전해지고 있을까?
나는 너무나도 왜곡되고 거꾸로 되어버린 기독교회 자체를 바라보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구약 시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며 탄식했던 호소가 아니었던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려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있을진저..." 이사야5:20

그런 의문과 당황 속에서 성경을 편견 없이 다시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오히려 성경을 성경대로 믿고 전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 중의 한분이 바로 sostv 강병국 목사였다.
성경을 근거로만 해서 왜 "원죄론"과 "에정론"이 잘못된 사상인지 풀어놓은
그분의 설교와 책들에서 나는 많은 부분 성경적 진실을 이해하고 거꾸로 된 기독교회의 형편을 볼 수가 있었다.

정말 다수가 깡패라고
다수면 정통이고 힘없는 소수이면 이단이 되는 기독교계의 병폐가 신물이 날 정도였다.
역사 속에서 교회 마저 거꾸로 가고 있었다니...

장로교회를 30년 이상 다닌 나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거대 사이비 집단 "신#지"나 "통#교"등 을 두둔하려고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대게 많은 경우 사이비나 이단을 바로 집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단지 자신들과의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소수의 진실한 사람들 역시
이단 상담소의 이단 사냥꾼들에 의해서 무고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장로교 고신 출신인 필자가
그 장로교 고신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강병국 목사를 옹호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라도
나의 이러한 답답함과 진실한 호소를 독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어거스틴의 예정론과 원죄론 (원죄론이 기독교의 중심교리로 둔갑하게 된 배경)
http://blog.naver.com/svid/20117589526

이단감별사들의 이단판별 기준은 합당한가?

기독교 이단 상담소의 이단 조작 실태








지옥으로 몰고가는 강병국 목사? (김경환 목사의 주장에 대한 반론)

성경침례교회(?)의 김경환 목사라는 사람이
강병국 목사를 "지옥으로 몰고간다..."라고 했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성경적으로 분별해 보고자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지옥으로 몰고간다..."라는 편협함과 독선이 불편함을 자아내지만
이러한 비상식적 태도나 편견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며
객관적으로 성경으로만 반박을 해보고자 한다.

먼저 강병국 목사를 "지옥으로 몰고간다..."라고 한 그의 주장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강병국 목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 교리를 가르치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을 제쳐 두었는가?

성경침례교회 김경환 목사는 강병국 목사가 믿음의교리, 은혜의 교리는 제쳐두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본인의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김경환 목사가 다른 개신교회들 처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개념을
지적인 동의 수준으로 머물러 두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오류로 타인의 합당함을 제한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강병국 목사는 믿음이나 은혜를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  참된 은혜가 무엇인가?를 환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대부분 개신교회들이 믿고 있는 잘못된 은혜의 교리
즉 하나님의 은혜로 계명을 폐하고 행함을 폐하는 반쪽짜리​ 복음을 경계하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된 순종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믿음이 있다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행위를 버리고 참된 행함을 낳게 되어있다는 뜻이지 김경환 목사처럼 "믿음만 있고 은혜만 있으면 구원이지 순종의 행함은 구원과 상관없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김경환 목사 자체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개신교의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본인이 중심이 되어 개신교 전반을 비판하고, 참된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는 강병국 목사마저 정죄하는 모습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2. 강병국 목사, 새 이스라엘의 교리가 잘못 되었는가?

성경침례교회 김경환 목사는 문자적 혈통적 이스라엘을 아직도 하나님의 유일한 선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로마카톨릭 예수회의 신학적 산물인 세대주의의 그늘에서 그가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가 주장하는 환란 전 휴거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환란 전에 휴거되어 올라간다는 논증 역시 그가 세대주의에 물든 목사라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성경은 분명히 예언적 안목과 역사의 시각 속에서 혈통적 이스라엘이 그 선민의 지위를 잃어버렸음을 선고하고 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혈통적 유대인)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선민의 지위)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순종하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3

​유대인들이 전 민족적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 그 결과 그들이 선민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이제는 십자가를 믿는 모든 민족이 누구나 하나님의 약속의 선민이 될 수 있음을 바울은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혈통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믿음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9:6~8​

김경환 목사야 말로 본인 스스로 성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아직까지 혈통적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보고 있는 것이며
본인의 생각이 전혀 성경과 맞지 않은 인간의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철학으로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타인을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7년 대환란, 비밀 휴거, 적그리스도 3년반 통치 등 그 허황된 시나리오의 근원
http://blog.naver.com/svid/220078558665

​▶ 환란 전 휴거의 오류를 밝힌다 1부 (환란전 비밀휴거를 성경적으로 재검토하라) ​
http://blog.naver.com/svid/20134591405


3. 강병국 목사, 행위구원을 주장하고 있는가?​

성경침례 김경환 목사는 강병국 목사의 언급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생애를 사는 자들이...거룩한 성령의 열매맺는 자들이다..."라는 언급을 마치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치부하고 있는데
본인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성경에 대한 무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행위구원이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는 구하지 아니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를 쌓기 위하여 행위에 의지하는 것을 행위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맛보고
그 은혜에 반응하여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을 행위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김경환 목사는 사랑으로 순종하는 의의 행위,
계명에 순종케 해주는 성령의 역사와 그 열매 마저도 행위구원이라 오도하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구원관과 성경관이 크게 잘못 되어 있음이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 개신교회를 비난하면서 본인이 아직까지 기존 개신교회의 잘못된 구원관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세대주의 역사관과 구원관 속에서
기존의 종교개혁가들과 개신교의 선진들이 고수해온 참된 진리(역사주의적 성경 해석)를 전하는
강병국 목사를 이단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환 목사의 마지막 발언



"강병국 목사가 구원받지 않은 이단 목사인 것을 분명히 알아 그의 거짓 교리에 속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는 그의 요구가 과연 누구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 우리 모두 성경과 양심에 호소하길 바라는 바이다.